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늑대와 향신료/실제 중세시대와의 비교 (문단 편집) === [[무역]] === || [[파일:중세_행상인.jpg|width=500]] || || 중세 여자 행상인을 그린 삽화 || * 크래프트 로렌스를 비롯한 다양한 행상인들이 등장한다. 로렌스의 말에 따르면 [[행상인|과거에 혼자서 다니기도]] 하고, [[대상|무리를 지어 다니기도]] 했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여행상인(travelling merchant)과 [[대상]](carovana)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. 또한 로렌스의 최종 꿈이 자신만의 가게를 가지는 것인데 이는 중세 중기부터 행상인들이 정주상인으로 변한 것을 의미한다. ||||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1 12세기 전형적인 [[이탈리아]] 상인은 상품을 가지고 지중해 전역을 돌아다니는 여행상인이었던 반면, 중세 말의 일반적인 이탈리아 상인은 본토에 머물면서 해외시장에 대리인을 보내 국제무역을 관장하는 정주상인으로 변모했다. 그런 점에서 중세 말 정주상인의 사업 패턴은 오늘날 [[종합상사|무역상사]]의 그것과 여러 면에서 유사할수 있다고 말할수 있다. }}}}}} ---- 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2 『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』}}}}}} || ---- * 14권에 용병단에 물자를 보급하는 상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중세 전쟁터에서 물자를 담당했던 주보상인(酒保商人)을 말한다. ||||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1 "필론은 __물자를 운반하는 등의 수송대 역할을 맡고 싶어 하는,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상인들__에게 용병들을 알선해 주고 있지요." 물자 보급 담당자는 용병들 입장에서는 심장과 같을 만큼 중요한 위치이니 제3자에게는 가능한 감추려 할 것이다. }}}}}} ---- 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2 [[하세쿠라 이스나]] 지음, [[박소영]] 옮김, 『늑대와 향신료 (14)』, 서울, 학산문화사. p13}}}}}} || ---- ||||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1 군대에서 병참은 전투력 유지의 근본이다. 병참은 군대에서 필요한 물자를 관리하고 보급하는 군사 행위다. 하지만 그 무렵 군대는 이러한 병참을 직접 챙기지 않고 외주를 주어 이를 하청업자들에게 맡기는 형태였다. __그리하여 빵과 고기, 술 등의 조달과 배분은 민간업자인 주보상인,,酒保商人,,들이 맡았다. 주보상인은 이러한 병참뿐만 아니라 [[무기]], [[탄약]], [[갑옷]] 등과 함께 생활에 필요한 잡화도 취급했다. 그리고 각종 약탈품을 싸게 매입하기도 했다. 전투가 끝나면 병사들에게 주점이나 도박장을 열어주고, 요리, 세탁, 제봉, [[간호사|간호를 담당할 여자]]들을 데리고 다니며, 필요시에는 병사들에게 [[위안부]] 서비스까지 제공했다.__ }}}}}} ---- 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2 『홍익희의 유대인경제사 5: 중상주의를 꽃피운 유대인들 근대 유럽 경제사 上』}}}}}} || ---- ||||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1 [[이세환]] : 용병들을 항상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? 무기에서 부터 여흥까지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. [[허준(게임 캐스터)|허준]]: 유흥 [[에이전시]](agency) 같은.. (중략) [[임용한]] : 용병들이 왜 자꾸 약탈을 하다보면, 원정을 하면 수레들이 따라오거든요. 제일 중요한게 식량이거든? 이게 보급을 해주면 괜찮은데 전쟁터라는 게 보급이 꼭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. 그럼 따라다니는 상인들에게 사야 해요. [[윤지연]]: 그럼 부르는 게 값이겠네요. 임용한 : 그렇죠. [[바가지(경제 용어)|50배가 기본이에요.]] 이세환 : 그런 상인들을 보통 주보상인이라 불렀는데 이 상인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있습니다. "원 스탑, 올 서비스(ONE STOP, ALL SERVICE). 무기, 식량, 잡화까지 모두 다 댄다." }}}}}} ---- 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2 [[토크멘터리 전쟁사]]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S8Fhoq6i_Fc|94회 전쟁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준 용병1]]}}}}}} || ---- ||<:> [[파일:external/www.doopedia.co.kr/547657.jpg|width=450]] ||<:> [youtube(KRT8u9MAY_E, width=100%)] || * 작중 도시 간을 오가는 행상인들로 인해 무역이 이루어 지고 있음이 잘 드러나는데, 실제 12세기의 중세 유럽은 원격지 무역의 발달로 [[행상인]]들이 도시 간의 거래를 본격적으로 활성화하기 시작했으며, 이 덕에 생산지와 소비지가 구분되는 시기이기도 했다.[*출처4 『세계사 속 경제학』] 또한 로렌스가 [[곡물]]이나 병구류, [[청어]], [[가죽]]등을 자신의 전담 도시들을 오가며 거래하는 모습은 곡물과 [[소금]], [[포도주]] 같은 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의 상품들은 전담 상인들에 의해 도시 간 이동 및 거래가 이루어진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. ---- * [[소금]]이 내륙에 점차 이동되던 시기도 바로 이때로, 1권 첫 부분에서 고급 [[담비]]털[* 참고로 [[중세]] 귀족들에게 인기있던 모피중 하나가 담비였다. 밀로네 상회와 같은 거대 상회에 로렌스가 거래를 청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.] 과 교환한 것이 바로 소금이었다. [*출처1] 소금은 당시에 매우 중요한 교역 물자였는데, 거의 1,000여 년간 경제도시로 군림했던 독일의 뤼네베르크(Luenburg)는 956년부터 소금이 도시의 주요 수입원이었는데 1276년경에는 소금무역으로 전성기를 이뤘을 정도다.[* 이후 뤼네베르크의 명성은 항구도시 [[뤼베크]](Luebeck)로 이동했다.][*출처9 『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』] ---- * 5권과 6권에 주요 거래품목으로 나오는 모피는 [[중유럽]]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다. 주요 거래는 [[북유럽]]과 [[플랑드르]]를 통해 이루어 졌으며[*출처12 『하룻밤에 읽는 유럽사』] 이들 지방에서는 모피의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면 난감한 경우도 발생하기도 했다. [[이슬람]]의 성장과 [[스페인]]의 무역실패 등으로 인해 무역이 일시 정지되었던 11세기에는 고급 모피였던 담비 털을 구하지 못해 [[왕실]]에 까지 상대적으로 낮은 품질이었던 [[토끼]]털을 사용했다.[*출처2 『권력과 부』] ---- * 6권에서 동전을 실어 나를 때 정해진 규격의 상자를 사용한다고 언급되는데, 실제로 중세에 동전뿐 아니라 거래물품을 운반할 때는 정해진 규격의 나무통을 사용했다. 규격을 정한 나무통은 운반이 쉬운 데다, 세금을 측량하기에도 알맞았기 때문이다. [[독일]] 뵈멘 지방에서는 동물이나 소금을 실어나를 때도 나무통을 썼을 정도.[* 참고로 동물을 실어 나를 때는 107파운드(약 48kg)인데 반해, 소금을 실어 나르던 상자의 무게는 144파운드(약 65kg)까지 무게가 나왔다고 하며 만약 12개의 소금 통이라면 약 780kg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. 그러므로 소금장수들에는 [[말(동물)|말]]과 수레가 필요했고 따라서 소금장수들은 기본적으로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이들이 할수 있는 직업이었다.] 1500년대에 들어서는 해마다 28,000개의 큰 소금 나무통을 실어 날랐고, 1620년에는 연중 70,000개의 나무통이 실어나갔다. ---- || [[파일:external/www.alte-salzstrasse.de/57f5ee2a0f.jpg]] || || 중세 유럽의 소금길 || * 당시 행상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2가지로, 하나는 정비가 되지 않아 지나치게 울퉁불퉁한 도로, 그리고 언제 출몰할지 모르는 도적 떼와 늑대의 습격이었다. ||||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1 ([[토빗기]]를 다룬 그림) 《토비아와 천사》가 불티나게 팔린 배경을 살펴보면, 그 시대의 비지니스 환경을 알 수 있다. 여행을 거듭해야 하는 상인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'여행길의 안전'이었다. 언제 어떻게 무뢰한이나 도적들이 출몰할 줄 몰랐다. 심지어 친척이 배신하여 돈이나 물품을 훔쳐 달아나는 일도 있었다. 당시에 여행은 금품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며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길이었다. 그렇기 때문에 상인들은 《토비아와 천사》를 집에 걸어두고 여행길의 무사 안전을 기원했던 것이다. }}}}}} ---- 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2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, 『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』}}}}}} || 이 사실을 알게 된 영주들은 세금을 거둘 명목으로 소금길(Salzstraße)을 건설해 안전을 보장해주는 대신 돈을 받았다. [[독일]] 북부 소금길들은 12세기~16세기 독일의 북쪽과 남쪽을 잇는 주요 교통로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중요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.[*출처9] ||||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1 그 지방의 권력자가 만드는 경우도 있다. 길이 나도록 풀을 깎아내는데, 돈이 많은 곳에서는 돌을 깐 위에 목판을 올려놓아 마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. 물론 그런 길은 공짜가 아니라 상당히 많은 통행세를 내야 하는데, 그런 길에는 도적에 대한 대응도 철저하기 때문에 시간과 안전을 고려하면 오히려 싸게 먹힐 수도 있다. }}}}}} ---- {{{#!wiki style="margin:10px" {{{-2 [[하세쿠라 이스나]] 지음, [[박소영]] 옮김, 『늑대와 향신료 (2)』, 서울, 학산문화사. p.81}}}}}} 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